배트 스피드,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사진=Wikimedia by Turboball, CC-BY-SA-3.0>

“어릴 적부터 나는 매번 풀 스윙했다.” 프로 시절 남다른 배트 스피드를 지녔던 김재현 해설위원의 말이다. 그는 고관절 부상으로 운동 능력에 제한이 있었음에도 ‘캐넌히터’라는 애칭까지 얻으며 프로야구의 한 시대를 풍미했다.

1987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최고의 관심사는 한 선수였다. 고등학생이라고 믿기 힘든 배트 스피드는 전 구단 스카우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바로 켄 그리피 주니어다.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은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높은 배트 스피드를 지닌 타자는 항상 관심의 대상이다. 많은 사례가 증명하듯, 높은 배트 스피드가 성공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 선수들의 배트 스피드는 어느 정도의 수준이며 어떤 방식으로 측정되고 있을까?


배트 스피드가 궁금해

한 언론사의 과거 보도에 따르면,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평균 배트 스피드는 주로 128km/h에서 145km/h 사이에서 형성된다. 특급 선수들의 경우 160km/h가 넘어갈 때도 있다고 하는데, 중요한 점은 기사나 글마다 이러한 수치가 상당히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간혹 배트 스피드와 타구의 속도를 같은 수치로 오인하기도 하지만, 주된 원인은 바로 배트 스피드의 측정 위치/상황/방식 등의 차이다.

배트 끝과 임팩트 부분의 속력을 측정하면 서로 다른 결과를 보인다. 배트 스피드를 측정하는 위치에 따라 수치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배트는 잡고 있는 손을 중심으로 스윙 궤적을 그린다. 즉, 손에서 멀리 떨어진 부분을 측정할수록 더 높은 수치를 나타낸다.

측정 상황의 차이는, 어떤 공에 반응하느냐를 뜻한다. 티 배팅의 경우 멈춰 있는 공을 치기 때문에 공의 위치를 판단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실제 경기에선 투수와의 수 싸움을 한다. 직구를 노리다가 예상치도 못한 변화구를 맞닥트리면 배트 스피드는 평소보다 줄기 마련이다.

측정 방식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배트 스피드 측정에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레이더를 이용할 수도 있고 단순히 영상 프레임을 나눠 계산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배트 손잡이 끝 (노브)에 부착하는 형태의 기기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를 포함한 모든 측정 방식에 서로 간의 오차가 존재한다.

<Blast Motion(위), Zepp(아래)>

배트 스피드 측정 장비 중 유명한 기기를 꼽자면 Blast Motion과 Zepp이 있다. 둘 다 배트 노브에 장착한 후 운용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측정 방식이나 정확도가 조금씩 다르다. Blast Motion에서는 최고 레벨의 타자들이 경기 중 대략 105~137km/h의 배트 스피드를, Zepp에서는 121~145km/h 정도의 배트 스피드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러한 측정 장비는 메이저리그뿐 아니라 KBO리그에서도 이미 여러 구단에서 활용 중이다. 근래에는 사설 야구 아카데미에서의 지도 목적이나 야구 유튜브 소재로 이용되기도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배트 스피드 측정 방식으로 실제 경기에서의 측정이 불가하다는 점이다. 경기 중 타구 속도나 각도에 대해서는 트랙맨과 같은 장비가 즉시 결과를 측정하지만, 선수의 세밀한 동작에 관한 부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선수들이 실전에서 어떤 배트 스피드를 보이는지 알 방법은 없는 걸까?


배트 스피드를 알아낼 수 있을까

경기 중 직접 측정은 할 수 없지만, 차선책으로 배트 스피드의 추정값을 구해볼 수는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이곳에 설명되어 있다. 링크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앨런 네이선 박사의 배트와 공의 충돌 연구를 통해 배트 스피드를 구해보자’는 것이다.

<타구 속도에 관한 앨런 네이선 박사의 공식>

위는 네이선 박사의 공식이다. EV는 타구 속도, eA는 충돌계수(혹은 반발계수), vball은 공이 충돌하기 직전 속력, vbat은 배트 스피드를 나타낸다. 위 식을 vbat에 관한 식으로 바꿔 주기만 하면 우리가 원하는 배트 스피드를 계산할 수 있게 된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Baseball Savant에서 타구 속도에 관한 자료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원하는 선수의 배트 스피드 추정값을 구해볼 수 있다. 2가지 문제점만 해결한다면 말이다. 바로 주어지지 않은 eA와 vball에 임의의 값을 넣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vball의 경우 투구한 공이 스트라이크 존에 도달하기까지 평균적으로 8.4% 감속한다는 사실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eA의 경우에는 조금 까다롭다. 이 상수는 -0.1에서 0.21까지 상황별로 다양하게 주어진다. 공이 배트에 가장 정확하고 강하게 맞았을 때 0.21의 값을 갖는다.

따라서 필자도 링크 원문의 내용을 빌려 특정 선수별로 가장 높은 타구 속도를 기록했을 때 eA값을 0.21로 하는 방안을 택했다. 그 외 세부적인 계산을 마치면,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아래는 2019년 메이저리그 데이터를 이용해 100번 이상의 타구를 만들어낸 선수의 배트 스피드를 추정한 결과다. 이 수치는 정확하게 검증된 값이 아니다. 직접 측정이 아닌 물리학 공식을 이용해 추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글의 요지이니 수치는 대략적으로 참고하길 바란다.

< 2019시즌 MLB 배트 스피드 추정값, 단위: km/h>

2019시즌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최소 100km/h(빌리 해밀턴)에서 최대 129km/h(그레고리 폴랑코)에 이르는 평균 배트 스피드를 보였다.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는 최대 137km/h가 넘는 배트 스피드를 기록했다. 크리스티안 옐리치(136.1km/h), 아리스티데스 아퀴노(136.0km/h), 피터 알론소(135.8km/h), 애런 저지(134.5km/h)가 뒤를 이었다. 이는 Blast Motion에서 예상한 상위 리그 타자들의 추정 값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결과다.


새로운 물결

올해부터 메이저리그는 공식 트래킹 업체를 트랙맨에서 호크아이로 교체했다. 하지만 선수의 움직임이나 스윙 궤적까지 알아낼 수 있다던 호크아이의 능력은 뜻밖의 불청객으로 인해 아직까지 베일에 싸여 있다. 언젠가 메이저리그가 개막하면 추정 값이 아닌 실제 측정값의 배트 스피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이보다 더 흥미로운 정보까지도.


기록 출처: Baseball Savant, Fangraphs

야구공작소 홍길동 칼럼니스트

에디터=야구공작소 이도삼, 야구공작소 조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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